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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성친동종계서豐壤姓親同宗契序 |
난정의 모임(蘭亭之會)1)에서 곡수정(曲水之宴)2)의 유풍流風을 서로 계승되어 옴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후대의 사람들이 이를 받들어 본받으며 계契를 명분으로, 신의를 지키고 화목하게 어울리며 서로 즐기고 있으니 어찌 훌륭하고 장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일반인들과는 즐기면서 일가친척과는 서로 기뻐하지 않는다면 또한, 본말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이다. 우리들의 계契는 선조先祖의 뜻을 잊어버리지 않으며, 아래로는 동성同姓의 뜻을 저버리지 아니함에 있다. 또한 서로 사이좋게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서로 허물함이 없으니(式相好無相猶)3) 그 도타움과 화목함의 의리義理는 어떠하겠는가!
아아! 시조이신 문하시중공門下侍中公께서는 여기에서 태어나고 이곳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7백여 년이 지났는데도 모든 고향 분들이 그 묘소를 알고 그 역사적 일들을 전하니 이 또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 이후도 자손들이 이런 인연으로 거주하며 울타리와 담장을 서로 접하고 사립문을 서로 마주 대하고 있다. 살아서는 같은 들에서 농사짓고 죽어서는 같은 산에 장사를 지내니 이곳에 거주하면서 시중공 선조를 조상으로 하는 자들로서 계를 만들어 친목을 닦는 일을 어찌 아니할 수 있겠는가.
정해년丁亥年 봄에 나는 바야 흘러 거상居喪 중이었는데 우리 형께서 나에게 의론하길4) 「풍성豐城이라는 이 땅이 한씨韓氏의 영주潁州, 소씨韓氏의 미주眉州와 같아5) 살아서는 떠날 수 없고 죽어서도 버릴 수 없는 곳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한 항렬行列의 당내지친堂內至親은 물론 집안의 여러 형제가 함께 있으니 모두 어질고 존경스러운 모습이다. 이는 한씨韓氏나 소씨韓氏가 얻지 못한 것을 우리는 얻었으니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하였다.
이에 약정서約定書 한 권을 만들어 초상初喪이 일어나면 서로 간에 돕고, 봄과 가을로 함께 모여서 부추를 베고 대추를 따서6) 제사를 지내기로 한다. 또한, 시중공 시제 날에는 제향祭享을 마친 이후, 우로雨露에 서글퍼지는 회포懷抱를 동성동목(同姓同穆: 성(姓)을 같이 하고, 항렬(行列)을 같이 하는)의 도리를 익히기로 하였으니7) 그 뜻이 어찌 있는 바가 없겠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계획을 한 것은 진실로 옛날 분들이 미치지 못했던아름다운 뜻일 것이다. 다음 세대의 자손들이 또한, 이러한 뜻을 되새기며 영원히 변함없이 이행해간다면 어찌 한갓 한 마을만의 아름다움이겠는가. 가르침을 도와서 미풍양속美風良俗을 이루어 가는 의의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아! 우리 동계인同契人들은 권하고 격려하며 노력해야 할 것이다.
豐壤姓親同宗契序 蘭亭之會 曲水之宴流風相繼 其來古矣 後人慕之托契 修信詡詡 然相樂豈非盛事也 然與衆人爲樂 而不與親戚相怡 不亦顚耶 吾等之契 異於是上 不忘先祖之志 下不負同姓之義 式相好無相猶 則其敦睦之義 爲如何哉嗚 呼始祖門下侍中公 生於斯葬於斯 七百歲之後 一鄕人 猶識其墓 傳其事 不亦幸矣乎 其後子孫因居 焉藩垣相接 門扉相對 生而耕一野 死而葬一山 則宅斯書祖 先祖者 作契修好 烏可已也 丁亥之春余方在憂 吾兄謀於余曰 豐城此地 猶韓之於潁 蘇之於眉也 生不可離 死不可去 而又有諸父諸兄 皆仁且賢 是韓蘇之所未得 而吾等獨得之 不亦樂乎 因寫契約一卷 死喪之相救 春秋焉相會 剪韮剝棗 又迨於上境之日 是旣祭之後 叙雨露愴恨之懷 而講同姓同穆之道也 其意豈無所在歟 然則吾等之爲此計 誠古人不及之美意 後之子孫亦知此意 其永無替 則豈徒一鄕之美事 賛化成俗之意 亦在其中 嗟我同契勗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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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
1) 왕희지(王羲之)가 중국 진(晉)나라 때 손탁(孫綽)·사안(謝安) 등 41명의 명사와 함께 회계(會稽)에 있는 난정(蘭亭)의 작은 강가에서 몸을 씻는 수계(修禊)를 가지며, 모임에서 쓴 시를 모아 서문인 「난정서(蘭亭序)」를 지었는데, 이를 계기로 명사들의 모임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2) 술잔을 물에 떠내려 보내는 동안 시를 짓지 못하면 술 세 말의 벌주를 마시게 하는유상곡수(流觴曲水) 형식의 연회였다. 신라 시대 포석정(鮑石亭) 연회를 떠올리게 한다.
3) 『시경(詩經)』 소아(小雅) 사간(斯干)에서 나오는 시구(詩句)로서 형제간에 서로 사랑하고, 허물하지 말라는 뜻이다.
4) 이 서문은 저술 연도와 작자가 표기되어있지 않다. 다만 영호공 엄(曮)이 소장하고 있던 세록(世錄)의 끝에 첨부된 것을 발굴한 것이다.
5) 풍성(豐城)은 풍양(豐壤)의 별칭이며, 영주(潁州)와 당나라 문장가 한유(韓愈)의 고향이고, 미주(眉州)는 송나라 문장가 소동파(蘇東坡)의 고향을 지칭한 것이다.
6) 전구박조(剪韮剝棗): 『시경(詩經)』에서 인용한 문장으로 봄에는 부추를 베고, 가을에는 대추를 따서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다.
7) 즉 조상을 추모하고 종족 간에 돈목(敦睦)을 나눈다는 뜻으로 우로창한(雨露愴恨)은 『(禮記』 祭義의“봄에 우로가 내리고 군자가 밝게 되면 반드시 우척(忧惕)한 마음이 일어나 돌아가신 부모나 조상을 뵌 듯한 생각이 난다.”라는 문구를 인용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