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공 지린
전직공 휘 지린 |
관직은 천화사 전직(天和寺 殿直)이시다. 그러므로 옛날 기록에는 천화공(天和公)이라 표기된 곳도 있다.
그러면 천화사 전직이란 무슨 관직이란 말인가. 우리는 우리 세보(世譜)의 전직공 주(殿直公 註)에 있는 “허씨족보(許氏族譜)에 이르기를 천화사(天和寺)란 글자 밑에 진전(眞殿)이란 두 글자가 빠졌다는 의심이 난다(譜云天和寺下疑脫眞殿二字)”란 기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진전(眞殿)이란 임금의 영정(影幀), 곧 어진(御眞)을 보관하는 전각(殿閣)이다.
고려사(高麗史)를 살펴보면 역대왕의 어진을 사찰(寺刹) 경내에 진전(眞殿)을 지어 모시고 재위중(中)인 왕들이 거동하여 알현했다는 기록이 많이 보인다. 천화사는 장단(長湍)의 치동(治東)에 있는, 당시의 수도였던 개성(開城)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절이다.
또한 고려사를 살펴보니, 예종(睿宗) 15년(1120) 7월에 예종이 천화사에 거동했고, 예종 16년(1121) 7월에 또 천화사에 거동했고, 의종(宗) 15년(1161) 8월에 의종이 천화사에 출어(出御)하여 9월에 장원정(長源亭)으로 이어(移御)했다가 다시 천화사로 이어했고, 의종 19년(1165) 2월에 의종이 홍원사(洪圓寺)에 출어했다가 천화사로 이어하고 다시 홍원사로 이어했다가 또 다시 천화사로 이어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왕들이 무슨 이유로 천화사에 갔다는 기록이 당장은 보이지 않으니 고려사를 통독하지 않고서는 얼른 어떤 단정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허씨 족보에 진전(眞殿)이란 두 글자가 빠진 것 같다는 기록과 예종이 2년간이나 꼭 7월에만 거동했다는 기록을 대조해 볼 때, 그 절에 어떤 왕의 어진(御眞)을 모셔놓고 기일(忌日: 小大詳)에 찾아가 알현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 이 가능하게 된다.
이 추측이 맞다면 전직공의 관직은 그 진전을 지키는 전직(殿直)이었을 것이고, 조선 왕조의 능참봉(陵參奉)이나 전참봉(殿參奉)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