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양조문의 유래

풍양조문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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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01.png 풍양조씨(豐壤趙氏)의 유래

 

우리 시조 조맹(趙孟)의 원래 이름은 바우岩이다.

 

공은 풍양현(현 남양주군 진건면 송능리) 독정산(獨井山)의 암석 밑에서 태어나 농사를 지으며 천마산 기슭 바위 동굴에 은둔해 살았던 도인(道人)이었다. 세상에 전해지기를 당시 신라를 정벌하던 고려의 태조 왕건(太祖 王建)은 영해(寧海)지방 전투에서 신라군에 참패를 당하여 휘하의 장군들을 모아놓고 중지를 모았을 때 한결같은 대답은 풍양현에 숨어 사는 바우(岩) 도인의 지략을 빌리자는 것이었다.

 

이에 왕건이 공를 찾으니당시 나이가 70세이었다. 이때부터 공께서는 남쪽 지방 정벌의 길에 올라 뛰어난 지략과 용맹으로 고려 통일을 이루는 데 공헌을 한다. 그 공(功)으로 공(公)께서는 개국공신이 되며, 태조 왕건으로부터 휘(諱) 맹(孟)이라는 이름을 하사받는다. 또한 벽상공신(壁上功臣)이란 훈호(勳號)를 하사받았으며, 벼슬은 문하시중(門下侍中) 평장사(平章事)에 이룬다. 지금도 천마산에는 왕건을 만났다는 암굴(巖窟)이 있으며, 후손들은 이를 추모하기 위해 그곳에 절을 짓고, 견성암(見聖菴)이라 칭하여 수호하고 있다. 그러나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여기에서는 풍양이란? 견성암은 풍양조문의 메카이다!

풍양조문의 원찰: 견성암, 시중공 휘맹의 묘, 견성암 산영탱화와 시중공 휘맹의 동상, 풍양현 고을의 변천사 등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