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대사성록
대사성록大司成錄 |
이 름 |
호號 |
직 위 |
시 대 |
파별派別 |
조 익趙 翼 |
포저浦渚 |
좌 의 정 |
인조 |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
조복양趙復陽 |
송곡松谷 |
대 제 학 |
효종 |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
조상우趙相愚 |
동강東岡 |
우 의 정 |
숙종 |
회양공청교파淸橋派 |
조지겸趙持謙 |
오제迂齊 |
부 제 학 |
숙종 |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
조원명趙遠命 |
|
판돈령부사 |
영조 |
회양공청교파淸橋派 |
조상경趙尙絅 |
학당鶴塘 |
판돈령부사 |
영조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재호趙載浩 |
손재損齋 |
우 의 정 |
영조 |
회양공청교파淸橋派 |
조 정趙 晸 |
내호來湖 |
이조참의 |
영조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재홍趙載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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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사 헌 |
영조 |
회양공청교파淸橋派 |
조문명趙文命 |
학암鶴巖 |
좌 의 정 |
영조 |
회양공청교파淸橋派 |
조현명趙顯命 |
귀록歸鹿 |
영 의 정 |
영조 |
회양공청교파淸橋派 |
조최수趙最壽 |
죽천竹泉 |
지 돈 령 |
영조 |
회양공청교파淸橋派 |
조석명趙錫命 |
묵소墨沼 |
판돈령부사 |
영조 |
회양공청교파淸橋派 |
조 엄趙 曮 |
영호永湖 |
이조판서 |
영조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정진趙鼎鎭 |
|
호조판서 |
정조 |
회양공청교파淸橋派 |
조상진趙尙鎭 |
류창榴窓 |
판돈령부사 |
정조 |
회양공청교파淸橋派 |
조진관趙鎭寬 |
가정柯汀 |
판돈령부사 |
정조 |
회양공청교파淸橋派 |
조진화趙晉和 |
|
이조참판 |
순조 |
회양공청교파淸橋派 |
조경진趙璟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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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 리 |
순조 |
회양공청교파淸橋派 |
조종영趙鐘永 |
북해北海 |
이조판서 |
순조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병현趙秉鉉 |
성제成齊 |
대 제 학 |
순조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병구趙秉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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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 지 |
순조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만원趙萬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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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조판서 |
순조 |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
조인영趙寅永 |
운석雲石 |
영 의 정 |
순조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용화趙容和 |
청소晴沼 |
형조판서 |
순조 |
회양공청교파淸橋派 |
조기영趙冀永 |
|
판돈령부사 |
순조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병기趙秉夔 |
소석小石 |
병조판서 |
헌종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학년趙鶴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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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판서 |
헌종 |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
조운철趙雲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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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조참판 |
헌종 |
회양공청교파淸橋派 |
조병항趙秉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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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참판 |
헌종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연흥趙然興 |
|
이조참판 |
헌종 |
회양공청교파淸橋派 |
조성하趙成夏 |
소하小荷 |
이조판서 |
헌종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봉하趙鳳夏 |
|
이조판서 |
헌종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병필趙秉弼 |
간산幹山 |
판돈령사사 |
고종 |
회양공청교파淸橋派 |
조동면趙東冕 |
|
이조판서 |
고종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병집趙秉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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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 지 |
고종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경하趙敬夏 |
|
지중추부사 |
고종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 채趙 埰 |
|
이조참판 |
고종 |
회양공청교파淸橋派 |
조준하趙俊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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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참의 |
고종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강하趙康夏 |
|
예조판서 |
고종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동필趙東弼 |
|
이조참판 |
고종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영하趙寧夏 |
혜인惠人 |
판돈령부사 |
고종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준영趙準永 |
송간松磵 |
이조참판 |
고종 |
회양공청교파韓平君派 |
조창하趙昌夏 |
|
이조참판 |
고종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동윤趙東潤 |
혜석惠石 |
이조참의 |
고종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희철趙熙哲 |
|
이조참판 |
고종 |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
조영하趙榮夏 |
|
이조참판 |
고종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병철趙秉轍 |
|
예조판서 |
고종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정구趙鼎九 |
月坡居士 |
판돈령부사 |
고종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동협趙東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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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판 |
고종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동필趙東弼 |
|
이조참판 |
고종 |
회양공한평군파韓平君派 |
조병익趙秉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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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강원첨사 |
고종 |
회양공청교파淸橋派 |
조운주趙雲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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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사 성 |
고종 |
회양공청교파淸橋派 |
조희일趙熙一 |
화농華農 |
공조판서 |
고종 |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
대사성大司成이란?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에 둔 정삼품正三品 당상관堂上官으로 정원은 1명이다. ‘사장師長’이라고도 불렀으며, 문과 출신의 학문이 뛰어난 자로서 보임하였다. 1366년(공민왕 15) 성균관을 다시 짓고 이색李穡을 겸대사성으로 임명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조선 개국 초에는 고려시대의 직제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러나 1401년(태종 1) 직제의 일부가 개정되었는데, 좨주祭酒가 사성司成, 악정이 사예司藝 등으로 개칭된 것이 그것이다. 그 뒤 1466년(세조 12) 관제가 크게 개혁될 때 성균관의 직제도 바뀌어 정비되었다.
성균관에는 으뜸 벼슬로 지사(知事: 正二品), 버금 벼슬로 동지사(同知事: 從二品)가 있었으나, 모두 타관他官이 겸직兼職하였으므로, 전임관專任官으로는 대사성大司成이 최고관最高官이어서 사실상 으뜸 벼슬이었다. 이때 『경국대전』에 명문화된 대사성은 전임 관직으로 성균관의 실질적인 장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따라서 성균관의 실질적인 장으로서 유학의 진흥과 문묘文廟의 관리를 맡고 있었으므로 원칙적으로 겸직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법제상 전임직이었지만 겸직하는 예도 많았다. 또 정삼품관이 아닌 상위上位의 1·2품 관원이 겸직하는 예도 있었지만, 순조純祖 이후 겸직이 금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