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양인의 발자취
중시조中始祖가 가문을 일으킨 중흥조라면 그를 중심으로 가문이 번성하고 인물이 탄생하며 한 씨족의 집성촌이 형성된다. 가문의 역사는 곧 인물의 역사이다. 그 지역에 문화를 꽃피우는 것도 그 인물들이 생산했던 유산에 의해 결정된다. 한 씨족사회의 전통의 보전·계승 정도가 명문가名門家의 바로미터인 것이다.
조선 시대 명문가의 기준은 학문이 깊은 대제학大提學 즉 문형文衡과 도덕성이 높은 청백리淸白吏가 많이 나와야 하고 역신逆臣이나 탐관오리가 없어야 한다.
풍양조씨豐壤趙氏는 문과급제자 182인을 배출하여, 상신相臣이 7인이 나왔으며, 문형이라 칭하는 대제학大提學은 4인,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하게 한 제도인 호당湖堂에 2인이 올랐다. 또한 홍문관·이조·정부(政府: 廟堂)의 투표圈點를 통해 다득점자의 순으로 결정되는 홍문록弘文錄에는 39인이 올랐으며, 성균관과 문묘를 관리하는 대사성大司成은 54인, 조선 전기의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의 전통을 이어받은 정조의 정치기반 세력이었던 초계문신抄啓文臣에는 7인을 배출했다. 그리고 시호諡號를 받은 분은 33인, 종묘배향은 5인으로 양반 가문 중에서도 손꼽히는 문벌門閥인 명문가名門家로 칭송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중시조 이야기, 풍양조문의 인물인 고려시대 인물, 국조문과·무과방목, 상신록(삼정승), 문형록(대제학), 호당록, 홍문록(옥당록), 초계문신록, 대사성록, 시호록, 문집록, 서원배향, 종묘배향, 서화가와 조선조 왕후로 효순왕후와 신정왕후를 소개하며, 풍양 갤러리에서는 영상 또는 사진으로 보는 박물관을 꾸미고, 자유 게시판을 통해 잊혀진 이야기를 발굴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