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렬과 씨족사회의 위계질서

항렬과 씨족사회의 위계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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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01.png 항렬과 씨족사회의 위계질서

 

동성은 백대지친百代之親이라는 속담이 있다. 같은 종씨宗氏면 멀기는 하더라도 친척임은 틀림없다는 뜻이다. 동성동본은 어느 곳이든 서로 반기며 통성명通姓名하며 항렬과 생년을 묻고, 어느 파派냐고 물으며 자연스럽게 아재, 형님, 대부님 및 족장族丈님 등으로 호칭을 한다. 족친 간에는 어는 곳에서 만나든 낯섦은 쉽게 가시고 금방 친밀감 넘친다. 처음 만난 사이치고는 단박에 가까워진 사이이다. 일족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고 따뜻한 나눔의 정情이라 할 수 있다. 동양사회의 유교적 가치관이 주는 끈끈한 혈연관계로 묶여있는 공동체 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나이가 어린 높은 항렬行列과 나이가 많은 낮은 항렬의 만남은 어색하기도 하고 부담스러운 관계이다. 항렬의 위계에 따른 호칭의 문제 때문이다. 종친회 또는 집안 모임 등에서 늘 시끄러운 사안이다. “나이보다는 항렬이 우선이다.”“나이가 우선이다.” 때론 열을 올리며 갑론을박 말다툼을 하기도 한다. 유교 문화권에서 언어예절은 늘 민감한 사안이다. 그렇다면 나이와 항렬의 다툼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가름할 것일까?

 

항렬行列은 같은 혈족 사이에 세계世系의 관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한 씨족의 서열과 위치를 구분하는 문중의 율법이기 내재하였기 때문이다. 대가족 사회에서는 나이 어린 삼촌과 나이 많은 조카가 한집에 사는 경우가 흔하게 발생했다. 따라서 이 공동체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당내친堂內親이라는 친족의 범위 및 친족 간에 윤리적 위계질서의 개념 역시 요구된다. “당내堂內”를 직역하면 “집안”이라는 뜻이다. 당내친堂內親은 한집안 또는 같은 마당에 함께 사는 혈연관계를 의미한다. 즉 당내친이라는 개념은 부계 친족집단의 범위이며, 그 집단의 구심점인 공동 조상의 존재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은 오복五服의 친족개념을 규정하였다. 오복은 망자亡者의 혈통 관계에 따라 구분하여 상복을 입는 제도로 고조부高祖父를 공동의 조상으로 하는 팔촌八寸 이내의 일가一家로 정의하고 있다. 이를 우리는 유복친有服親이라 한다.

 

유복친有服親은 복의 종류가 다를 뿐 복제服制에 따라 상복喪服을 입는 가까운 혈족으로 그 관계는 삼종형제(8촌)까지이다. 따라서 당내지친堂內至親 간에는 나이보다는 항렬行列이 우선으로 예禮를 갖추어야 한다. 나이가 많은 아래 항렬이 나이가 적은 위 항렬에 존댓말을 사용하고, 나이가 적은 위 항렬은 나이가 많은 아래 항렬에 하대하는 것이 유교적인 율법이다. 유교적 도덕에서 다섯 가지 도리道理 중 하나인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친족 관계의 윤리를 나타낸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장유유서를 단순히 어른과 어린이 사이의 순서와 질서로 알고 있으나 유교적 종법宗法 질서인 소목昭穆의 순서를 우선으로 한 질서이다. 쉬운 말로 항렬의 순서이다. 나이 위인 조카가 어린 삼촌을 얼른 대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항렬 우선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나이 차이가 나면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며, 서로 간에 존중과 배려하며 도리를 다해야 하는 것이 사대부가士大夫家의 법도이다.

 

그에 반하여 무복친無服親은 상복을 입을 촌수를 벗어난 친척으로 원칙적으로는 5세世 이후의 동족同族을 가리킨다. 여기서부터는 항렬이 아무리 높더라도 항렬이 낮은 나이가 많은 분께 함부로 하대하는 결례를 범해서는 안 된다. 격몽요결擊蒙要訣 접인장接人章에 나오는 말입니다.

 

무릇 사람을 대할 때에는 마땅히 온화하고 공경하게 할 것을 힘써야 하니, 나보다 나이가 갑절이 많으면 아버지를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10년이 많으면 형을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5년이 많으면 또한, 약간 공경을 더 할 것이니, 가장해서는 안 될 것은 배운 것을 믿고 스스로 고상한 체하며 기운을 숭상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일이다.

 

항렬이 높다고 종인 간에 나이는 많지만, 항렬이 낮다고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당내친이 넘는 관계에서는 항렬보다는 나이가 우선이다. 우리가 종중 모임에서 간혹 접하는 일이지만 항렬이 높다고 촌수를 가리기도 어려운 종친께서 대접받기를 원하는 경우가 있다. 극히 잘못된 일이다. 대종손 집 종손은 항렬이 낮으니 모든 종인에게 하대를 받아야 하지 않는가? 항렬은 단지 부계혈족 계통도의 세수世數 관계를 표시한 세계世系일 뿐 지친至親의 서열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유복친을 벗어나는 종친 간에는 척분戚分을 따질 수는 없다는 뜻이다. 무릇 종친을 대할 때에는 항렬을 따지기보다는 마땅히 서로 간에 도리를 섬기고 존중하는 예의범절부터 갖추어야 한다.

 

아마도 나이보다는 항렬을 우선으로 한 풍조는 고종원년(1865) 왕명으로 대동항렬을 시행하면서부터 생긴 듯하다. 흥선대원군 섭정 시에 전국에 하달한 왕명은 이러하다.

각 성씨性氏들이 각기 항열자行列字에 따라 작명하고 장파長派의 항렬자를 따라 통일統一해서 성명性名만 보더라도 그 관향貫鄕과 항렬을 단번에 알아보고 서로 돈목敦睦하고, 위아래로 서차次序를 혼동混同하여 망발되는 일이 없게 하라!

이는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 강화를 위해 대동항렬을 통한 씨족사회 통제수단으로 사용한 듯하다. 당시만 해도 한 씨족들이 촌락을 이루며 무리를 지어 사는 사례가 많았으므로 씨족사회 명령체계 확립을 위해서도 동족 간에 서열화가 필요했을 것이다. 대동항렬은 돌림자를 통한 서열화 신장 및 유대 관계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오늘날에 와서 항렬을 통한 씨족의 서열화가 그릇된 것이라 폄훼해서도 안 된다. 먼 촌수라 할지라도 혈족의 세계世系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마땅히 항렬과 나이가 충돌하기보다는 상호 조화를 이루는 씨족 전통문화의 창출이 필요하다. 씨족 간에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도 서로 간에 예의를 갖추어 정중하게 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미 사용하고 있는 호칭들이 있다. 한 항렬 위면 족숙族叔이나 아재(아짐), 두 항렬 이상 위면 할아버지나 대부(대모)라 부르면서 예의를 갖춘다. 한 항렬 아래일 때에는 조카님이나 족질님, 두 항렬 아래면 족장님으로 호칭하면서 정중하게 존댓말을 사용한다. 각종 모임에서 혹 종친 간에 만남이 이루어지면 통성명을 하게 마련이며, 동성동본同姓同本이면 자연스럽게 세계世系 위치를 분명히 하기 위해 항렬을 따지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하지만 계촌計寸을 벋어나면서까지 호칭 문제로 설왕설래하는 것은 사대부가士大夫家의 후손으로 예의에 벗어나는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