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묘 분묘 출물 통지문
시조묘 복원 출물 통지문(修墓時出物通文) |
익翼1),즙濈2), 정靖3), 방직邦直4), 흡潝5), 직溭6)등 통문
알리는 말씀(인조 8년, 1630년)
시조始祖 시중공侍中公의 묘소가 풍양豐壤 적성동赤城洞에 계시는데 성능成陵과 같은 곳이므로 해서 평장平葬된 바 있다. 그러나 능은 이미 혁파革罷되었으므로 다시 옛 묘의 모습으로 되찾아 할 일이나 지금까지 회복되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우리 자손들의 죄입니다.
금번에 모든 종원宗員의 노력으로 상소上疏하여 다신 묘를 단장하고 표석表石을 세우고 석물石物을 갖추려고 합니다. 따라서 모든 우리 내외 자손된 사람은 각각 미포(米布; 쌀 및 베, 무명, 비단)를 내어 이 역사(役事; 토목공사)를 도와야만 하겠습니다.
修墓時出物通文 右文 始祖侍中公墳墓 在豐壤赤城洞 廢朝時以成陵同原故夷之 今陵已罷 卽當復成墳形 而至今未復 誠吾輩子孫之罪也 今者相議上疏將復成墳 且立表具石物 凡我內外子孫各出米布以助 其役爲幸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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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
1) 익(翼) [1579~1655] 자 비경(飛卿), 호 포저(浦渚), 시호 문효(文孝), 문신·학자, 문과급제, 예조판서, 좌의정 등. 경학(經學)·예학(禮學)에 밝으며, 대동법 시행을 주장, 저서에『浦渚集』,『浦渚遺書』,『家禮鄕宜』 등, 숭양서원, 명고서원에 제향되었다.
2) 즙(濈) [1568 ~ ]. 자 덕화(德和), 호 화천(花川). 문과급제, 부수찬·장령·영해부사·동부승지,『명종실록』의 개수·편찬 때 부교리로서 참여, 사은사 겸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3) 정(靖) [1555~1636]. 자는 안중(安仲), 호는 검간(黔澗), 문과급제, 임란 때 의병으로 참여, 봉상시정·이조판서에 추증, 속수서원에 봉향. 저서는『검간문집』『진사일록(辰巳日錄)』이 있다.
4) 방직(邦直) [1574~1637]. 자 숙청(叔淸), 호 수죽(脩竹). 문과급제, 장령·사간·집의·좌부승지, 영사공신(寧社功臣), 성리학에 뛰어났으며 저서로 『수죽유고』있다.
5) 흡(潝) [ ~1661]. 자 흡여(潝如) 풍안군(豊安君)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 부평도호부사·상의원정·공조참의·한성부좌윤, 저서『풍안군일기(豊安君日記)』, 시호 경목(景穆)이다.
6) 직(溭) [1592~1645]. 자 지원(止源), 호 지재(止齋). 호조좌랑·형조정랑·고성군수 등, 시문과 산수화에 능했다. 대사헌으로 추증되고, 한천군(漢川君)에 추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