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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수요회 행사(한산군, 조경장군 유적, 대전뿌리공원, 포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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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24-08-16 16:25 조회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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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도 수요회 행사

 

수요회는 풍양조씨 친목단체로서 2개월에 한번씩 2번째 수요일에 모임을 가지며 그동안 많은 회원들이 참여하여 종회원간의 하합과 종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여 왔다. 현재는 용구 회장(호군공파)과 남각 부회장(회양공파), 각파를 대표하는 6명의 운영위원이 이끌어가고 있으며 금년 상반기 활동을 간략히 소개한다. 1월 회의에서는 회원 관리상 앞으로 연속 3회 이상 불참하는 회원에게는 회원명부에서 제외하기로 결의하였다.

 

▣ 시무식 및 활동계획 논의(2017년 1월 11일)

img9-1.jpg1월 11일 45명의 회원이 대종회관 회의실에 모여 시무식을 거행하고, 금년 한 해 우리 문중 화합과 단결을 다짐하였다. 주최측에서 마련한 푸짐한 시루떡과 막걸리 잔을 서로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금년 활동계획으로 3월은 용진 교수의 강의, 5월은 한산군 묘소 성묘, 7월은 병섭 수요회 운영위원의 포저공에 대한 특강, 9월은 포저공 묘소 성묘, 11월은 우천선생 추모제 행사를 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날 봉구 원로회원(호군공파)께서 「인간관리 기법」이란 주제로 특강이 있었으며 회원들의 큰 호응이 있었다.

 

 

▣ 시조 영정 해설 특강(2017년 3월 8일)

3월 8일 대종회 회의실에서 용진 자문위원의 「풍양조씨와 초상화」주제 특강이 있었다. 용진 교수는 초상미술 부문에서 우리나라 최고 권위자이며, 1981년도에는 견성암 산영각에 봉안된 우리 시조님의 영정을 이모(移模) 제작하였다. 또한, 지난해에 우리 문중 휘장과 종기 제작의 디자인을 주관하는 등, 우리 종회 발전을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는 문중의 인재이다.

여기에서 우리 시조 영정 제작과정에 대하여 알아본다. 용진 자문위원의 설명을 기술한다.

“1981년 이모를 위하여 배견한 견성암 산영각의 영정 원본은 비록 풍화에 의하여 자연 퇴색 파손되었으나, 비단에 당채(唐彩)를 사용한 조선시대의 전통화법으로, 당시 종회 측으로 부터 모사(模寫) 제작을 요청받고, 약간 현대적으로 변형된 초안을 마련하였는데, 이를 보신 종회 측에서 ”가능한 한 원본 그대로 그려 달라“고 요청하시므로, 이모(移模)로서 현재 견성암 산영각에 봉안된 영정을 제작하였습니다. 당시 퇴색 파손된 원본은 그 상태대로 표구를 다시 하였고, 종회에서 보관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현재 그 소재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합니다.”

시조 영정에 대하여 조선시대 전통적인 산신도와 비교하면서 각 부문별 의미를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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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조 시중공 영정에 담긴 뜻은 「사후 천마산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을 상  징적으로 묘사하였으며,

2) 흉배와 상투싸개(皐)로 고려개국공신의 관직을 나타냈고,

3) 서왕모(西王母)가 시동과 함께 와서 불로초와 천도를 바치고(호랑이 옆),

4) 모란(부귀)과 화병(평안)으로 부귀평안을 빌며(발치 끝),

5) 남채화(藍采和)로 인생무상을 노래하는 구성으로서,

6) 우리민족의 전통사상인 조상숭배사상을 표현하였다.

또 한가지 유의할 점은 많은 분들이 시조 영정에 대하여 불교도상(圖像)인 탱화(幀畵)의 일종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으나, 이런 산신화는 우리 민족의 전통사상을 불교가 토착화하는 수단으로 수용한 것이다. 이 형식은 우리민족의 전통 산신화법에 의하여 제작된, 우리 시조의 관직과 사후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에 충실히 맞추어진 영정으로서, 약 200년 전 이를 살펴 제작한 선조님들의 높으신 혜안이 살아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 한산군 묘소 성묘와 조경(趙儆)장군 유적답사(2017년 5월 17일)

금년도 첫 번째 종중방문 행사였다. 이른 아침 43명의 회원이 서울 매봉역에서 버스로 출발하여 양주시 광사동 한산군 선영에 도착 후 한산군, 한평군, 진사공 묘소에 성묘를 마친 후 오후 일정으로 고양시로 이동하여 행주대첩의 영웅 趙儆장군의 유적을 탐방하였다.

이번 행사에는 용구 수요회장, 남각 부회장, 동성 이사와 한산군 17세 후손 경구 대종회장, 남혁, 준묵, 남주 대종회 부회장, 돈학 감사를 비롯하여 원로분들과 많은 회원들이 참석하였고, 특히 상주, 대구, 부여 등 먼 지방에서까지 참석하여 뜻 깊은 행사가 되었다. 행사 내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 한산군 성묘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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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군 종산은 군부대 안에 선영이 있어 부대정문에서 출입수속을 마치고 묘정에 도착하니 한산군파종중 동연회장을 비롯하여 원로 임원들이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군부대 안에 묘소가 봉안되어 있음에도 웅장하게 정비되고 정결하게 관리되어 있어 모두 감탄하였다. 수요회에서 준비한제수를 차리고 龍九 수요회장이 헌관으로 봉작하고 참석자들이 참배하였다. 이어서 한산군파종중 관구 제례위원장으로부터 한산군파 선조 역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이 있었다. 파조 한산군(휘 溫之)은 회양공(휘 愼)의 다섯째 손자이며 公의 先考는 좌랑공(휘 安平)이다. 公의 子 한평군(휘 益貞)부터 18대 걸쳐 계속하여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고 현달한 인물이 많아 조선 후기에는 국정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많은 선조님을 소개할 수 없어 대표적으로 몇 분만 간략히 소개한다. 첫째 회양공의 증손자 한평군(휘 익정)은 회양공파 후손 중 최초로 당상관 반열(이조참판)에 오르고 이에 기반하여 3대 선조의 증직이 이루어 졌다. 公의 父 한산군은 贈 병조참판, 祖父 좌랑공(안평)은 贈 병조참의, 曾祖父 회양공은 贈 사복시정으로 추은 되었다. 또 한평군은 성종 때에 “암행어사제도”를 성안하여 왕의 재가를 받아 시행케 했다고 중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역사교과서에 수록된 인물은 조선 중기 유명한 서화가이며 청백리로 녹선된 창강공(휘 속), 통신정사로 일본에서 고구마 종자를 들여와 보급한 영호공(휘 엄)이 있다. 안동김씨 세도정치를 종식시킨 신정황후 조대비, 백범 김구  생과 상해임시정부를 이끄신 풍양조씨의 대표적인 독립지사 우천조완구선생이 한산군의 후손이다.

특히 금석문의 대가이며 한산군의 11대손 영의정 운석공( 휘 인영)이 최치원  생과 한석봉의 필체를 모각하여 건립한 한산군 묘비는 유물적 가치가 유명하여 전문 교수들의 탐방이 이어지고 있다. 이어서 성묘행사를 마치고 한산군파종중에서 준비한 오찬 장소로 이동하였다. 이 자리에서 한산군파 동연 장의 환영 인사말과 용구 수요회장의 감사인사와 참석 인사 소개 후 점심식사를 하며 서로간 돈목을 다지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 행주대첩의 영웅 조경 장군(평장사공파) 유적 답사

한산군 성묘일정을 마치고 오후에는 육군60사단(권율부대) 제160연대 “조경연대”방문과 행주산성의 유적을 답사하였다.

 

- 조경연대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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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에 위치한 조경연대(60사단 제160연대)에 도착하여 연대장 강창완 대령의 따뜻한 영접을 받고 부대명칭을 조경연대로 명명하게 된 배경과 부대에 설치된 조경장군의 업적 화보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용구회장이 수요회를 대표하여 금일봉의 장병위문금을 전달하였으며 우리 일행과 연대장이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부대 방문 행사를 마쳤다.

 

- 행주산성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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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란 3대 대첩중 하나인 행주대첩은 권율 장군의 전공으로만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승리의 결정적인 요인은 권율 장군의 조방장(참모장)이며 관군의 총 지휘관인 조경장군의 전략과 전술에 있었음이 최근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서울 탈환하기 위하여 병력 주둔지를 전략 요충지인 행주산성으로 정하고 허술한 토성에 빠른 시간 내에 2중 목책을 설치하여 적의 공격에 대비 한 것은 조경장군이었으며, 그 후 바로 수만 명의 왜군이 진격하여 왔고 수천 명의 군사로 대승을 거두어 서울 탈환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전공으로 조경장군은 임진란이 끝나고 선조임금으로부터 선무공신에 책록되었다. 이러한 유적을 답사하기위하여 고양시 역사 문화재 정동일 박사의 안내를 받아 평상의 안내코스를 바꾸어 조경장군이 지휘한 코스를 따라 해설을 듣고 다음과 같이 탐방하였다.

행주산성의 성역화 사업은 정동일 박사의 해설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시절에 이루어 졌다.

입구에 들어서면 권율 장군의 동상과 당시 전투장면을 동판으로 제작하여 뒤편에 벽을 설치하였는데 조경장군의 지휘 모습도 새겨져 있다.

산을 100미터 쯤 오르다 왼편으로 낮은 계곡 쪽에 조경장군전투지 안내판(위 사진)이 있다. 그곳이 목책을 쌓고 방아진지를 구축한 곳이라 한다.

 

- 행주대첩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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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대첩은 권율 장군과 관군, 승병, 의병, 백성까지 모두 힘을 모아서 만들어낸 승리이다. 하지만 이와 함께 승리의 숨은 공신은 바로 조선의 첨단 무기였다. 세계 최초의 이동식 로켓 발사대이자 신기전 100발을 최대 250m까지 날릴 수 있는 화차, 세계 최초의 2단 로켓인 산화신기전, 석회와 재가 담긴 주머니의 화학 반응을 통해 만든 무기, 폭발하면서 쇳조각이 비산하며 적을 무찌르는 비격진천뢰 등 행주산성은 우리 조상들의 무기 기술력이 총집합된 승리였다고 한다. 대첩 기념관은 임진왜란 때 무기고와 군량 창고가 있던 곳으로 지금은 유물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행주대첩비

img9-7.jpg덕양산 정상에 우뚝 솟아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권율(權慄)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왜병을 크게 무찌른 행주대첩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경기도민과 각계 유지들이 힘을 모아 1963년 8월에 건립한 것으로, 앞면에 새긴 큰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것이다. 행주대첩비는 모두 3기가 있는데 최초의 초건비는 1602년(선조 35)에 건립하였고 이것이 오랜 세월에 걸쳐 심하게 마모되어 알아볼 수 없게 되자 1845년(헌종 11)에 초건비의 비문을 그대로 옮겨 적어 더 큰 규모로 중건비를 세웠다. 1963년에 건립한 대첩비는 이들과 구별하여 재건비라고 부른다.

행주대첩은 왜군에 비해 열세인 전력을 가지고 우리 선조님들이 목숨을 바쳐 치열하게 싸운 끝에 승리를 가져온 전쟁으로 선조님들이 전해준 애국심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지며 기념촬영을 하고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이날 저녁 식사는 조경 장군 종손이신 장의공종중 돈환 회장님께서 접대를 해주셔서 회원들간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번 행사에 찬조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명단은 다음과 같다.

용구 수요회장 100만원

남각 수요회 부회장 20만원

윤묵 대종회 이사 10만원

백성대 노문사(종보인쇄처) 사장 10만원

한산군파 종중 - 점심제공

돈환 장의공파 종중 회장 - 저녁제공

 

 

▣ 교양강좌(2017년 7월 12일)

   - 주제 :『포저공 조익선생의 사상과 일생』

   - 강사 : 조돈환(평장사공파 장의공종중 회장)

   - 주요내용

      ◦ 포저공의 탄생과 성장/과거급제

      ◦ 포저공의 경세제민사상

      ◦ 교육 및 군정 개혁론

      ◦ 포저의 성리학

 

 

▣ 유적지 순례 행사(2017년 9월 22일)

► 대전뿌리공원 → 예산 포저공 묘소 → 화성 남원공 묘소 순례

 

이번 순례 행사에는 서울 52명, 대구 9명, 대전 20명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순례지 별 행사 내용을 소개한다.

 

1. 대전효문화뿌리축제 참석

9월22일부터 3일간 진행되는 제9회 대전효문화뿌리축제에 참석하기 위하여 서울, 대구의 수요회원들이 대전 뿌리공원에 모였고, 현지 대전종친회(회장 조인묵) 회원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우리 문중에서 지금까지 참가한 인원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참가하여 대전 종친들이 특별히 감사를 표하였다. 특히 이번 행사부터 우리 풍양조씨 종기를 앞세우고 입장하여서 감회가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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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산 포저공 조익선생 묘소 성묘

충남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 소재 포저공 조익선생 묘소를 순례하고 영정이 모셔진 도산서원에서 제례를 봉행하였다. 현지 포저공종중(회장 조병준)과 포저조익선생추모사업회(회장 조병현) 관계자들께서 일행을 따뜻하게 맞아주셨으며 후손 조병섭 교수로부터 포저공 조익선생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었다.

 

[포저공 생애 요약]

포저공은 1579(선조12)-1655(효종6) 시대의 인물이며 1602(선조35) 24세에 문과 급제하여 인조와 효종조의 청환직(淸宦職)을 거쳐 우리 문중의 최초 정승 좌의정을 지내신 선조이시다. 학계에서는 민생을 염려하며 조선을 움직인 4인의 경세가 중 한분으로 평가한다.

4인 경세가 - 栗谷 李珥, 梧里 李元翼, 浦渚 趙翼, 潛谷 金堉

 

◎ 포저의 저서

◦ 浦渚集   : 35권 18책, 규장각, 1692년

◦ 浦渚遺書 : 11권, 실학박물관

◦ 朱書要類 : 12권 6책 규장각, 1642년

◦ 家禮鄕宜 : 7권 2책, 필사본, 서울중앙도서관

 

일행은 도산서원에서 포저공 제향을 봉행하였다. 초헌관 경구 대종회장, 아헌관 남혁 대종회 수석부회장, 종헌관 봉구 호군공파 원로께서 헌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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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장사공파 남원공(휘 季呯) 묘소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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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 일행은 오후 5시경 경기도 화성시 송림동 평장사공파 종산에 위치한 남원공(南原公) 묘소에 도착하여 평장사공파종중(회장 趙俊默) 종친들의 따뜻한 영접을 받고, 조병섭 교수로부터 평장사공(휘 臣赫)파 선조님들의 역사와 남원공 휘 계평(季呯) 선조님에 대한 설명이 들었다. 이어서 평장사공파 俊默 회장으로부터 성묘단 방문에 대한 환영인사 말씀이 있었으며, 이어서 龍九 수요회 회장의 헌작으로 일동은 남원공 묘소 성묘 제례를 봉행하였다.

  성묘를 마친 후 평장사공파종중에서 대접하는 즐거운 저녁식사를 하며 龍九 수요회장이 평장사공파종중 회장님을 비롯한 관계자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며 이날의 행사를 마쳤다.

 

 

▣ 우천조완구선생 추모제 봉행 및 사업총회(2017년 11월 15일)

○ 2017년도 우천조완구선생 추모제 봉행 및 사업회 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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