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충원에서 내외분 합장 추모제 봉행(2019.11.13.)
페이지 정보
관리자 작성일24-08-14 16:40 조회126회 댓글0건본문
국립현충원에서 내외분 합장 추모제 봉행(2019.11.13.)
□ 풍양조씨 국립현충원 현충탑 단체 참배
11월 13일 수요일 풍양조씨 문중에서 처음으로 서울 현충원 단체 참배를 하였고 지난 6월 29일 충혼당에 안장된 우천 조완구선생 내외분 합장 추모제를 봉행하였다.
◈ 행사개요
- 현충탑 참배 : 헌화, 분향(대종회장 조남혁)
- 충혼당 참배 : 헌화, 분향(우천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 조남각)
- 충혼당 320호 봉안실 참배(집례자 조남돈 사무총장, 조운연 사무국장)
- 추도식 : 101호 제례실
- 감사인사 : 유족 조명숙(외손녀)
- 추모제향 : 충혼당 제례실
⦁초헌관 : 조남성 우천선생기념사업회 부회장(풍안군파)
⦁아헌관 : 조남철 수요회장
⦁종헌관 : 조명숙 유족 대표
- 행사 종료식
⦁남각 부회장 감사인사
⦁남돈 사무총장 경과보고
- 당일 헌성금 : 8,050,000원
대종회장 인사말
오늘은 풍양조문 전체가 뜻을 모아 이곳 국립 현충원에 모셔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희생정신을 추모하고, 애국애족 정신을 본받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또한 이곳 현충원에 모셔진 우리 문중의 거목이신 애국지사 우천 조완구 선생님 내외분 합장 추모제를 봉행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우리 문중은 이런 자리를 자주 만들어 풍양조문이 충효정신을 고양하는데 앞장서도록 하겠습니다.
일기가 고르지 못한 날씨에도 많은 분들께서 참석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천조완구선생 약력보고
◈ 생애
1881년 3월 20일 서울 계동에서 부친 이조참판 조동필씨와 모친 안동 김씨 사이에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나셨으며 1895년 예조판서 홍승목씨의 장녀 홍정식 여사와 결혼하셨습니다. 슬하에는 1남2녀이며, 독자 남규는 선생이 망명 중이던 1914년 6월 만주 용정에서 실종, 정경부인 홍정식 여사는 1945년 2월 선생이 환국하기 10개월 전에 고국에서 별세, 장녀는 1977년 사망, 차녀 규은은 2004년 타계하여 망명 애국지사의 가족사는 애통하기 그지없습니다.
◈ 독립운동사
- 1902년 한성법학전수학교 졸업 후 국내부 내부주사로 근무 중
- 1905년 을사보호조약에 울분하여 사직하고 독립운동에 투신
- 1914년 북간도에 망명 독립운동단체 결성하였고 그 후 1917년 블라디보스톡에 망명 항일운동 개시
- 1919년 3.1운동 후 상해에 집결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전원 위원장에 피선
- 1921년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차장에 취임
- 1926년 임시정부 상해에서 광동으로 이전, 김구 선생 국무령으로 피선
- 1932년 11. 10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회의 주석 조완구 명의 이승만 박사 제네바파견 특명수석 대표 신임장 발급
- 1944년 임시정부 국무위원에 재임명, 재무부장 겸임
- 1945년 김구 주석과 서안의 광복훈련 한미합동작전 참전
- 1945년 8.15 광복, 동년 12월 환국(31년간 망명 생활)
- 1948년 남한 우익대표로 김구 주석과 남북협상 주석단 일원으로 참석
- 1949년 백범 김구선생 서거 후 김구 선생 후임으로 한국독립당 위원장 취임
- 1949년 11. 24일 효창공원 김구 선생 묘비문 근찬
- 1950년 1. 29일 풍양조씨 대종회(화수회) 초대회장 취임.
- 1950년 6. 25 동란 발발, 9. 18일 애국지사 조소항 등과 함께 납북
◈ 서거와 추모사업
- 1954년 10. 27일 북한 군병원에서 서거(1991. 10. 1일 서거 소식 알게 됨)
- 1989년 3. 1일 애국지사 건국훈장 대통령장 서훈
- 1991년 10. 27일 대전에서 선생 추모제 거행
- 1991년 11. 21일 정부 주최 납북유공자 민족지도자 15위 추모제 거행. 국립현충원 무후 선열단에 위패 봉안
- 2000년 6. 9일 풍양조씨대종회 주관 「우천조완구선생기념사업회」 창립
- 2003년 5. 6일 독립기념관에 「우천조완구선생어록비」 건립 (기념사업회주관)
- 2005년 4. 10일 남양주 풍양조씨 종산에 「초대 대종회장 우천조완구선생 공적비」 건립
- 2019년 6. 29일 충북 괴산에 안장된 배위 홍정식 여사 유해를 국립현충원 충혼당 320호 15열 5단에 우천선생 위패와 합장 봉안.
- 2019년 11. 13일 국립현충원에서 추모제 봉행
추 도 사
오늘은 105년 전 국치의 울분에 25세의 청년이 노모와 식솔들을 뒤로하고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일념으로 결연히 망명의 길을 떠났던 애국지사 우천 조완구 선생님 내외분 합장 추모제를 봉행하고자 여기 모였습니다.
금년은 우천 선생님의 서거 65주기이고 정경부인 홍정식 여사의 74주기입니다. 우천선생님께서는 6.25동란 중 납북되시어 북한에 묘소가 봉안되어 있어 현충원에 위패만 봉안되었고, 배위 홍정식 여사는 충북 괴산에 묘소가 안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홍여사님의 유해를 국립 현충원에 봉안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법규상 제약으로 지난 6월 29일에야 당국의 허락을 받아 이곳 국립현충원 충혼당에 우천선생님의 령패와 합장 봉안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보고된 약력보고에서 알 수 있듯이 우천선생님의 조국 광복운동과 통일운동의 큰 업적은 청사에 길이길이 간직될 것이며, 우리 모두가 본 받아야할 정신입니다.
또한 우리 문중에는 초대 대종회장을 맡으시어 문중발전에도 큰 족적을 남겨 주셨습니다. 앞으로 저희 후배와 후손들은 선생님의 나라사랑 정신을 구현하는데 더욱 분발할 것을 다짐합니다.
또한 선생님의 희생정신과 구국운동의 업적이 많은 부분에서 가려져 있어 이를 적극적으로 찾아내어 추모 사업을 더욱 알차게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우선 선생님의 훈장 서훈 등급이 건국훈장 대통령장으로 최고 서훈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보다 차 순위 등급 훈장인바 이를 시정하는데 저희 기념사업회에서는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이는 최고 서훈된 인사들의 공훈에 우천선생님의 공적이 전혀 부족함이 없음에도 이렇게 된 것은 아주 잘 못된 것으로 반드시 서훈등급 상향을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기념사업회의 사단법인 등록을 빠른 기간 내에 이루어 우천선생님의 추모사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쳐 나아가겠습니다.
지금 이 나라는 분단의 역사를 간직한 채 사회적으로는 서로간의 이념전쟁으로 갈등과 혼돈의 시대를 격고 있으며, 선생님께서 바라시던 자유민주 통일조국의 모습과는 아직도 먼 곳에 있으니 영전에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선생님께서 한을 간직하신 채 북녘 땅에서 세상을 떠나신지 65년만에야 내외분 합장 봉안 추모제를 올리는 이 허물을 용서하여 주소서.
이제 못 다 이루신 여한을 저희에게 맡겨주시고 영면 하시옵소서.
삼가 내외분의 명복을 빕니다.
유족대표 감사인사
- 추모제를 지내면서 -
풍양조씨 종친회 여러 어르신들 모두 안녕하십니까?
저는 조 완자 구자(趙琬九)할아버지의 외손녀입니다. 오늘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신 충혼당에서 여러 어르신들을 모시고 추모제를 하게 되어 감개무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착잡합니다. 엄마가 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고생하신 엄마는 안계시고, 두 분을 기억하는 사람은 언니뿐이며,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저입니다. 언니는 건강이 안좋아 참석을 못하였고 저는 아직은 건강한 편이지만 벌써 칠십 중반을 넘었습니다.
이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2006년 10월 저희 자매는 4박5일동안 평양 ‘애국열사능’에 꽃다발을 놓고 참배하면서 많은 생각을 가졌습니다. 엄마는 이미 돌아가셨고, 평생 독립운동에 몸 바쳐 가족을 돌보지 못했던 할아버지는 평양에, 가족을 지키면서 일본놈들에게 굴하지 않고 고생하셨던 할머니는 괴산에 묻히셔서 돌아가신 후에도 헤어져 있는 우리의 가족사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모든 일에 책임감 같은 것을 느낀 저는 늘상 생각에 잠기곤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하나!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기에, 작년 6월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에 계신 할아버지 위패를 뵙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보훈처에 구구절절 사연을 적어 민원을 보냈는데, 충혼당에 두 분을 모실 수 있다기에 저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대종회에 답장을 보냈는데 저보다 더 기뻐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대종회에서는 조남돈 사무총장님께서 중심이 되어 괴산 할머니 묘소 개장, 화장, 운구 절차에서부터 국립현충원의 각 부서별 행정절차, 봉안실 확보, 유해 봉안 절차를 세세히 준비해 주셨습니다. 실제 서류접수 등은 유가족인 제가 직접하였고 괴산 현지 개장 시작부터 국립현충원 봉안까지 한 치의 빈틈없이 진행되니 정말 가슴 벅찬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런 좋은 자리를 마련하게 되고 함께 추모제를 지내게 되어 저는 숙제를 마친 학생처럼 마음이 홀가분합니다.
이제 풍양 조씨 종친님들을 모시고 추모제를 지내게 됨을 고하고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고마운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보훈처와 국립서울현충원 담당자 그리고 괴산읍에 계신 담당자님들께도 이 자리를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특히 이 일에 발벗고 도와주신 조남돈 사무총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애국자는 아니지만 이 땅에 태어난 것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가난하게는 살았지만 부끄럽지는 않게 살았노라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노라고 다짐합니다. 여기에 오신 모든 어르신들 정말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천조완구선생 추모제 이모저모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