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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 조남권 선생 공적비 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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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24-11-26 16:54 조회18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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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平 趙南權 선생 공적비 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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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3일(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1 합동제단 공적비원에서  우천 조완구 선생 서거 70주기 추도식에 이어 우리 대종회를 위해 헌신하신 일평 조남권 선생 공적비 제막식이 거행되었다. 화창한 날씨에 조종현 대종회장, 조용구 우천기념사업회 회장, 조남각 상임고문, 조남혁 명예회장, 조경구 고문 등 60여 종친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제막식은 개회선언과 국민의례에 이어 조상정 부회장의 경과보고가 있었는데 건립 배경은 1950년 대종회 전신인 화수회가 창립된 이래 풍양조문과 종회발전에 혁혁한 功을 세우신 여섯 분을 선정하여 2005년에 우리의 성지 남양주 천마산 합동제단 아래 5좌의 功績碑를 세워 後代에 그 유지를 전하도록 하였는데 이러한 전통을 이어가고자 대종회 현대사에 가장 큰 功을 세우신 분으로 一平 趙南權 선생을 선정하여 2023년 정기총회 의결을 거쳐 이곳에 功績碑를 건립하게 되었다. 비 형태는 갓비형(높이 5자, 폭1자8치, 두께8치)이고 비 재질은 충남 웅천의 오석(烏石)이며 비문은 대종회 조용구 상임고문께서 찬(撰)하였고 서예가 조성주 박사가 서(書)하였으며 남양주 현대석재에서 제작하였다.

이어서 종현 대종회장의 식사(式辭)와 용구 상임고문의 비문 낭독이 있었다.

 

 

一平 豐壤趙公 南權先生 功績碑

 

  譜學과 漢學의 당대 권위자로서 豐壤趙門의 발원 역사와 시조님을 비롯한 선조님들의 사적을 고증하여 유적을 수호하고 漢字文獻들을 國譯 편찬하여 종중문화의 현대화에 앞장서 他宗門의 선망이 되고 우리 대종회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선구자 一平 趙南權선생의 공적은 필설로 나타내기 어렵다.

  公은 一九二八년 음력 三월一九일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에서 부친 元九公과 모친 청주韓씨 사이에서 출생하였으니 殿直公 之藺의 二五대손이요 淮陽公 愼의 一九대손이다. 일찍이 유학자 誠菴 趙俊夏선생에게 受學하여 爲己之學을 알았고 四書三經 등 漢文古典에 통달하여 명성이 자자하였다. 公의 생애는 전반기에는 譜學으로 후반기는 漢學으로 빛을 발하였다.

  公은 一九五八년 대종회 전신 화수회에 투신하여 총무로서 四O여 년간을 헌신하며 一九六一년에는 회양공 파보 발간을 一九七八년에는 역사적인 五重刊戊午譜 발간을 주관하였는데 이는 一九OO년 경자보 이후 七八년만의 일로 淸譜論을 실현한 노작이다. 또한 一九八一년에는 역대 선조들의 行狀과 碑文類를 國譯하여 豐壤趙氏世錄을 간행하였으니 趙門의 유구한 정신문화의 전통을 집대성한 大作이다. 一九八五년부터는 지파선대의 문집류를 총망라하여 일일이 解題를 붙여 원문을 印影발간함으로써 그 壽傳을 도모한 총 十七집의 豐壤趙氏文集叢書 발간사업을 三五년간에 걸쳐 二O一六년에 완성하였으며 한글판 풍양조씨문헌고 등 많은 서책을 발간하였다.

  公은 유적수호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一九七七년에는 주지승의 견성암 소유권 탈취시도가 있었는데 신속히 범행전모를 밝혀내 법적조치로 소유권을 대종회 명의로 회복시켰다. 一九七三년 대대적인 侍中公 묘소 치수사업과 개포동 대종회관 부지 확보 및 一九八七년 송능리 合同祭壇 설치 등 큰 사업을 기획하고 실무 집행하여 성취시켰다.

  公은 지파종중 宗事에도 솔선하였다.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한산군파 종산三二만평에는 한산군 溫之公을 비롯한 누대의 산소가 集葬되어 있는데 일제 때 저당 잡혀 해방되자 敵産으로 귀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公은 당시 趙大衍 한산군파종중 회장이 종중명의로 불하받기 위하여 동분서주할 때 조림계획수립 등 정부의 불하조건 이행실무를 장기간에 걸쳐 추진하여 一九六四년에 뜻을 이루었다. 또한 전국각지에는 公이 지은 일가들의 선조 金石文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公의 생애 후반기는 학문에 집중하여 여러 學人들에게 베푼 시기로 한서대학교부설 동양고전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면서 고전 강독반 운영 및 국역총서 간행으로 영일이 없었으며 자택에 溫知書堂을 개설하고 溫知學會를 조직하여 한문학과 국문학 전공의 노소 학자들과 교류하며 후학 양성에 힘써 지도 받고 따르는 제자들이 수백을 헤아렸다. 이를 계기로 公은 左議政 浦渚趙翼 생의 선양을 위해 一九九八년부터 二차에 걸쳐 浦渚趙翼선생의 경륜과 사상이라는 주제로 한서대학교부설 동양고전연구소에서 학술대회를 주관하였고 이를 기점으로 학계의 浦渚學 연구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한국 최초의 四書註釋書인 포저유서를 발굴하여 浦渚學을 開創하였다.

  公은 米壽인 老軀임에도 二O一六년부터 二O二O년까지 독립운동가이며 초대 화수회장이었던 藕泉趙琬九선생기념사업회장을 맡아 추모사업을 이끌었다. 公은 二O二三년 양력 十월一三일 화곡동 자택에서 향년 九五세로 영면하실 때까지 대종회 상임고문으로 宗事에 지도편달을 아끼지 않았으며 6.25 참전유공자로 국립승화원에 안장되셨다. 이에 풍양조씨 근대사에 큰 공적을 남긴 公의 명복을 빌며 이를 全 종인들과 後代에 전하고 기리기 위하여 대종회 제六九회 정기총회 의결을 거쳐 유서 깊은 豐壤趙門의 合同祭壇에 功績碑를 건립하는 바이다.

二O二四年 十一月 十三日

豐壤趙氏 大宗會 常任顧問  趙龍九 謹撰

書 藝 家  趙盛周 謹書

豐壤趙氏  大宗會長  趙宗鉉 謹豎

子 瑞衍 能衍 邦衍 利衍

孫子 誠浩 誠珉 誠振

孫女 誠希 誠恩 誠美

 

 

다음으로 조용진 자문위원의 추도사가 있었고 조병섭 부회장의 축사를 조민재 종인께서 대독하여 주었다. 이어서 공적비 제막과 함께 유가족의 헌화와 참석 종인의 일동 경례로 제막식 행사를 성대하게 거행하였으며 일평 선생의 큰아들인 조서연 자문위원께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점심 식사를 대접하였다.

 

▶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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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현 대종회장 式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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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구 상임고문 비문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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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정 부회장 경과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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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진 자문위원 추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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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섭 부회장 축사 조민재 대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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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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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조금 명세

NO.

성명

금액(원)

1

한산군파종중(회장 조농연)

1,000,000

2

평장사공파 구포종중(회장 조인환)

300,000

3

조종현 대종회장

300,000

4

풍양군파종회(회장 조흥구)

300,000

5

호군공파종중(회장 조성연)

200,000

6

조현구(대종회 이사)

200,000

7

장천서원

200,000

8

장수공파종회(회장 조성근)

200,000

9

조남각 (대종회 상임고문)

200,000

10

풍육장학회(이사장 조운구)

100,000

11

대구종친회(회장 조남선)

100,000

12

조성연(대종회 부회장)

100,000

13

조윤묵(대종회 이사)

100,000

14

조상정(대종회 수석부회장)

100,000

15

조남혁(대종회 명예회장)

100,000

16

조성록(풍옥헌공파)

100,000

 

3,600,000

17

포저조익선생추모사업회(평장사공파)

수건 150장(900,000)

18

중식 제공(고 남권 선생 유가족)

중식제공(1,3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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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방주공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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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