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의 배에서 얻은 미인(美人)의 상반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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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고 작성일24-12-31 11:22 조회68회 댓글0건본문
장인(丈人: 조안국(趙安國))은 가정 을묘년(1555, 명종 10) 왜변 때에 여러 장수들과 함께 어겨서 평안도로 귀양을 갔다가 곧바로 공로를 세워 속죄 하겠다는 명목으로 전라도 흥양현(興陽縣)의 녹도(鹿島)로 옮겨졌다. 얼마 후에 녹도에서 배 전체의 왜구를 몽땅 사로잡았으므로 장인은 공에 참여되어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데 왜구의 배에서 얻은 생초(生綃)에 미인의 상반신을 그린 그림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림의 미인은 하얀 꽃을 손에 쥐고 마치 그 향내를 맡고 있는 듯한 것이었다. 그 위에 시를 쓰기를,
졸다 깨니 중문은 오슬오슬 추운데 / 睡起重門淰淰寒
희끗희끗 귀밑머리 마전한 홑적삼이네 / 鬢雲繚繞練杉單
한가로운 이 마음 가는 봄이 애석해 / 閑情只恐春將晩
꽃가지 꺾어 쥐고 혼자서 보고 있구나 / 折得花枝獨自看
하였는데, 당인(唐寅)이 손수 소시(小詩)를 이렇게 쓰고, 아울러 도장까지 눌렀다. 뒤에 중국 소설을 상고해 보았더니, 당인(唐寅)은 소주(蘇州) 장주(長洲)의 이름난 선비였다. 그런데 남기(南畿)의 향시(鄕試) 자원으로서 거인(擧人) 서경(徐經)과 과실을 저질렀다. 기미년 회시(會試) 때 장고관(掌考官) 예부시랑 정민정(程敏政)이 글제 팔아먹은 사건으로 죄를 입고 관리에게 넘겨졌다. 그래서 한평생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고 문장과 서화로 스스로 즐기며 예술과 문장에 자못 유명해져서, 그림하면 백호(伯虎)를 꼽았다. 백호는 곧 당인(唐寅)의 자(字)다. 그의 그처럼 훌륭한 재주를 가지고 스스로 이름을 떨쳐서 제 몸을 마치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그 뒤에 임진왜란으로 서울이 함락되어 그 그림을 잃어버렸다. 그 시 또한 훌륭한데, 행여 후대에 영원히 없어질까 염려된다. 우선 이것을 기록하여서 재주를 품고도 시험해보지 못한 그 사람을 슬퍼한다.
윤근수(尹根壽)의 월정만필(月汀漫筆) 中에서
※ 첫머리 나오는 장인(丈人)은 월정 윤근수(月汀 尹根壽)의 장인인 평장사공파 한풍군 휘 안국(漢豐君 諱安國)을 일컫는 말이다. 윤근수는 선조 시대에 예조판서, 좌찬성 등을 역임하였고, 광국공신으로 해평부원군(海平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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