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그림 족자에 적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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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고 작성일24-12-31 12:20 조회72회 댓글0건본문
내가 예전에 초원(草原)의 역사(驛舍)에 있을 적에 매우 무료(無聊)하던 차에 어떤 나그네가 들렀기에 며칠 동안 함께 머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나그네가 자기 말로 매화를 잘 그린다고 하기에 그려 보게 하였더니 과연 솜씨가 좋아서 10여 장이나 그려 내었다. 그런데 내 생각에 이 그림은 잘 그리기는 하였지만 아무래도 매화와 비슷하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그릴 때에는 으레 절벽 사이에서 매화 가지가 옆으로 퍼져 나오게 한 뒤에 그 가지 위에서 두세 개 정도의 새로운 가지가 빠져 나오게 하고는 그 가지에다 꽃을 두세 송이 붙여 놓았는데 그 꽃이라는 것이 또 크기가 복사꽃과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매화를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모두 땅에서 나서 위로 곧추 올라갔지,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절벽 사이에서 옆으로 퍼져 나온 것은 있지 않았으며, 줄기에서 가지가 무성하게 벋은 가운데 복사꽃보다 작은 꽃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래서 그 나무와 꽃이 대체로 살구와 서로 비슷하였는데, 다만 깨끗하고 하얀 꽃이 일찍 피는 것과 그 향기가 귀한 점이 다를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그림과 비교해 보면 정말 딴판이었는데, 이는 그 나그네의 그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그린 것들을 보아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에 내가 세상의 그림은 모두 잘못되었다고 여기고는 내가 생각한 대로 한 장의 매화를 그려서 보여 주었더니, 그 나그네가 비슷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내친 김에 왕래하는 사람들에게도 보여 주었더니, 본 사람들 모두가 진짜 매화라고 하였다. 그 뒤로는 다시 그리지 않았는데, 20여 년쯤 지나서 아이들이 고지(故紙) 속에서 이 그림을 찾아내었기에, 내가 소싯적에 그린 것을 추억하는 뜻으로 마침내 장정(裝幀)하여 족자로 만들어 두었다.
그러다가 병자년의 병란(兵亂)을 당해서 집안에 있는 서화(書畫)들을 모두 놔두고 떠났는데, 사태가 진정된 뒤에 와서 살펴보니 모조리 없어진 중에서도 유독 이 그림 하나가 먼지와 흙 속에 버려진 채 남아 있었다. 이는 꼭 오랑캐가 가져갔다고 하기보다는 비어 있는 집에 들어와서 사람들이 모두 물건을 가져간 것일 텐데, 이 그림은 빛나는 물건이 아니라서 그냥 버려두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족자를 또 수습해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번에 서산(瑞山)의 수재(守宰)인 조군 속(趙君涑)이 들러서는 이 그림이 있는지 물어보기에 있다고 하였더니, 조군이 “다행입니다. 이것이 어느 시대의 그림인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기이한 그림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병란이 일어나기 전에 언젠가 내가 조군에게 보여 주면서 내가 그렸다고는 말하지 않았는데, 그가 필시 기이하게 보았기 때문에 지금 와서도 아직 기억하고는 물어본 것이었다. 대저 내가 처음 우연한 기회에 시험삼아 그릴 때에는 이 그림이 그렇게 기이한 것인지는 스스로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림을 잘 알아보기로 이름난 조군이 기이하다고 하니, 그렇다면 이 그림이 실제로 기이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를 계기로 생각해 보니, 이 그림을 그린 것이 지금으로부터 어언 30년 전의 일인데, 처음에 우연히 그리게 되었을 뿐, 중하게 여겨서 보관하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 뒤에 경향(京鄕)으로 왕래하고 난리를 만나 여러 차례 파천(播遷)할 때에 옛날의 문서들은 대부분 잃어버렸는데도 이 그림은 여전히 남아서 아이들에게 발견이 되었고, 지금 또 이 그림만은 유독 병화(兵禍)를 면해서 우리 집안의 골동품이 되었다.
모르겠다만 이처럼 미물(微物)이나 한사(閑事)에도 그 득실(得失)에 또한 운수가 작용하는 것인가? 이에 느껴지는 점이 있기에 이렇게 기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그림이 설령 기이한 작품이 못 된다고 하더라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에게 이 그림을 모사(模寫)하게 해서 자손에게 전해 주도록 할 것이요, 그리하여 이 그림이 우리 집안과 기이한 인연이 있다는 사실을 알도록 해 주어야 할 것이다.
포저 휘익(浦渚 諱翼)의 포저집(浦渚集) 중에서
[주-D001] 초원(草原) : 함경도 정평(定平)의 속역(屬驛)이다.
[주-D002] 조군 속(趙君涑) : 본관이 풍양(豐壤)으로 창강 휘 속(滄江 諱涑)을 이르는 말이다. 포저 휘익(浦渚 諱翼)보다 16년 연하이다. 시(詩)ㆍ서(書)ㆍ화(畫) 삼절(三絶)로 일컬어졌으며, 특히 매화와 대나무 그림을 잘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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