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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소: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3

2.사진설명:견성암 전경

  견성암(見聖庵)은 고려시대 풍양현(壤縣)이였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송릉리에 있는 풍양조씨 시조(壤趙氏 始祖)의 유적지에 세워진 암자(庵子)로써 풍양조씨(壤趙氏)의 재궁(齋宮)이다.

암자의 뒤에 있는 방 두칸 정도의 석굴(石窟)은 신라말기에 후일 풍양조씨의 시조(始祖)가 되신 분이 은거하여 수양하던 곳이다.

公의 初名은 ‘바위’로 보첩(譜諜)상의 ‘破回’는 바위의 음역이다. 후삼국 통일을 앞두고 현자(賢者)를 물색(物色)하던 후일의 고려 太祖가 된 王建은 公의 성명(盛名)을 듣고 이곳으로 ‘바위’를 찾아와 경국지사(經國之事)를 論한바 한번의 만남으로 의견이 합치되어 즉석에서 장군으로 임명하였다. 그 길로 왕건(王建)을 따라 남방정벌에 많은 功을 세웠으므로 고려개국공신(高麗開國功臣)이 되고 『趙孟』이란 이름을 하사(下賜)받았고 벼슬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이르렀으니 이 분이 바로 풍양조씨(壤趙氏)의 시조(始祖)이다.

1.장    소: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3

2.사진설명:견성암 일주문

그후 확실한 시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고려중기쯤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그 후손이 선조(先祖)의 유적지를 보호하기 위하여 석굴앞에 암자(庵子)를 지었으니 이것이 견성암(見聖庵)의 유래(由來)이며 그후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양주군지(楊州郡誌)에는 견성암(見聖庵)에 대하여 아해와 같이 기재(記載)되어 있기로 여기에 소개한다.

‘견성암은 진건면 송릉리 3번지 천마산(天磨山)에 있는 절로써 고려 개국 공신인 풍양조씨 시조 시중 조맹(壤趙氏 始祖 侍中 趙孟)이 은거양덕(隱居養德)하다가 고려태조(高麗太祖)를 친견하였다 하여 그 후손들이 이를 추모하기 위해 절을 짓고 견성암(見聖庵)이라 하였으나 처음 창건한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고 대략 고려 중엽으로 추정된다.

조선 철종 11년(1860)에 조시중(趙侍中)의 후손이며 스님인 보월 혜소(寶月 慧昭)가 법전(法殿, 法堂의 별칭)과 우화루(雨花樓)를 중수하고 고종 19년(1882년)에 봉성화상(鳳城和尙)이 중수한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1.장    소: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3

2.사진설명:견성암內 산령각

옛 기록으로는 견성암중수기(見聖庵重修記), 견성암우화루기(見聖庵雨花樓記), 견성암중수 각부 탱화신성기(見聖庵重修 各部 幀畵新成記) 등이 있고 조시중(趙侍中)이 수양할 때 홀로 마시던 우물이란 뜻으로 독정(獨井)이 사정(寺庭)에 있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줄지 않아 인근 부락에서 가물때에는 음료수로 길어 가기도 하여 이 절을 『독정이 절』이라 하여 사하촌(寺下村)을 독정리(獨井里)라 부른다. 또한 조시중(趙侍中)이 수양할 때 기거했다는 수양굴(修養窟)이 있고 조씨문중(趙氏門中)에서 이름있는 사람이 별세(別世)하면 가지가 하나씩 말라 죽는다는 기념송(紀念松)이 있었는데 이는 조시중(趙侍中)이 기념으로 직접 심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천년노송(千年老松)인 기념송은 미증유의 국가환란인 六ㆍ二五기 나단해인 1950년에 산령각(山靈閣)과 약사전(藥師殿)사이에 쓰러졌으나 신기하게도 이 두 건물은 조금도 훼손(毁損)되지 않은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다. 덧붙인 말은 見聖庵이 위치한 곳은 천마산(天磨山)의 지맥인 독정산(獨井山)인데 天磨山의 ‘磨’를 ‘摩’로 쓰는 일이 간혹있어 지적하니 앞으로는 ‘갈마字’인 ‘磨’로 써주기 바랍니다.

1.장    소: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3

2.사진설명:견성암內 암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