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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선계(先系)가 실전되어 소목(昭穆)을 가리지 못하게 된 종족이 적지 않을 것이나 강진(康津)에서 세거(世居)하여 온 상장군공파(上將軍公派)도 그 중의 한 파이다. 그 파조(派祖)의 휘는 보(寶)요, 상장군(上將軍 : 정 3품) 부정(副正 : 종 4품) 호군(護軍 : 정 4품) 추밀원사(樞密院使 : 종 2품)를 역임하고 도강백(道康伯)에 봉하여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도강(道康)은 고려청자(高麗靑瓷)의 산지(産地)와 정다산(丁茶山)의 유배지(流配地)로 유명한 전남 강진(康津)의 옛 이름이다. 그리하여 상장군공 자손들은 본관을 강진(康津)으로 써오다가 조선 중기 이후에 환관(還貫)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같은 성씨라 하더라도 관향(貫鄕 : 本貫)을 달리하는 것이 중국 고대의 원제도(原制度)였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조선 정조(正祖) 때 창암공(公 : 弘鎭, 청교파)이 여기 현감으로 도임하여 보첩을 살펴보고 “도강(道康)으로 호칭함은 천만부당하다.” 하시고, 곧 예조에 통문한 결과 조령(朝令)으로 환본(還本)한 것으로 전한다. 대동보에서는 무오보(1978)부터 합본(제 7권)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