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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운영위원
제 목    豐壤趙氏의 分派 由來

豐壤趙氏의 分派 由來


 


우리 풍양조씨는 고려 개국공신중 한분으로 왕건 태조로 부터 “孟”이란 사명을 하사 받은 統合三韓壁上開國功臣上柱國三重大匡 門下侍中 “趙孟”을 시조로 하는 우리나라의 “趙氏”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姓氏이다



시조로 부터 천백여년이 넘는  오랜 세월이 지나 그 자손이 번창하여 오늘날 까지 이어 내려오고 있으나 고려시대의 선조들에 관한 상세한 내력은 창간 辛亥譜가 발간 되기 까지는 자손들에게 구전 으로만 전해 내려 오다 보니 잊혀지고 빠진 내용이 허다하여 기록이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고 있다.


朝鮮朝 21대 英祖7년(1731,辛亥)에 발간된 창간 世譜(족보,또는 대동보라고도함)에 의하면 시조의 방주는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이 되었으나 배위에 관한 방주도 누락 되었으며 시조 이하 世系 실전이 있었음만 기록 하였을뿐 天和寺殿直 趙之藺(전직공)을 1세로 함에 있어 전직공의 윗대 실전 세수가 몇 대인지에  관한 언급이 없이 상대 세계가 부실하게 기록 되었다 하겠다.


뒤 이어 영조 36년(1760경진) 2중간보때 비로소 시조이하에 6세 실전이 있었음을 고증(石磵公 趙云仡의 자제 지석)을 통해 유추 확인하여 시조 아래로 6대를 공란으로 비워둔체 殿直公(趙之藺)을 창간보와 동일하게 1세로하고 전직공의 아들 溫珣(첨사공)을 2세,첨사공의 아들 振圭(예빈경공)를3세.예빈경공의 아들 晶(장령공)을4세,장령공의 아들 仁鴒(후예무고),幼鴒(후예무고),臣鴒(후예무고),叔鴒(용주공),季鴒(낭중공)을 5세로 하여 세보의 기틀을 확립 하였다.


 


고려 말엽경 5세 季鴒(낭중공)의 아들인 6세 代言公(諱 炎暉,보문각대제학)이 護軍公(諱 思忠)尙書公(諱 思恭)淮陽公(諱 愼)錦州公(諱 袵)등 4형제를 두셨는데 둘째인 상서공 (趙思恭)이 고려 공민왕 17년에 밀직부사김정(金精), 金興祖, 兪思義,金齊顔, 李元林, 尹希宗 등과 함께 당시 나라를 어저럽히던 요승 辛旽을 주살 할것을 모의 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도리어 화를 입고 유배도중 죽임을 당하였으며 상서공은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고 4형제중 남은 장형이신 호군공 思忠,계씨이신 회양공 愼, 말제이신 금주공 袵등 3형제만 간신히 목숨을 부지 도망 은신하며  대를 이어 내려오게 되었으며 그 자손들을  조상의 관직 이름을 따라  護軍公派,淮陽公派,錦州公派 라하였으니 이 3파가 신해보 상에 기록된  최초의 豐壤趙氏의 3大派이며 이 3개파를 합쳐 殿直公派라고 일컫기도 한다.


 


   신해보 후 2중간 경진보때 전직공파와 세계를 달리하는 실전 세수를 알수 없는 臣赫(門下侍中平章事)을 1세로 하는 平章事公派가 입보하게 되어 조선 시대에는 豐壤趙氏가 4大派로 대별 되였다.


그후 일제치하 해방 그리고 625전란이 지난후  현 대종회의 전신인 豐壤趙氏花樹會에서 구간(舊刊)에 이어 5중간 무오보(1978)를 발간하면서 새로이 실전 세수를 알수없는 寶(上將軍,자손 강진 거주)를 1세로하는 上將軍派가 입보하게 됨에 따라 현제 豐壤趙氏는 護軍公派 淮陽公派 錦州公派 平章事公派 上將軍公派등 5派로  세보 등재 순에 따라 분류 되며  이를 豐壤趙氏 五大派라 부르고 있다.


                                  글쓴이;조 병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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