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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운영위원
제 목    보각국사 조혼수(普覺國師 趙混修)와 청룡사(靑龍寺) 2





















































































































2, 청룡사와 보각국사
  예성춘추(蘂城春秋)에 의하면 청룡사의 창시시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청계산(靑溪山) 중허리에 조그만 암자가 있으니 그것이 
곧 청룡사요, 그 유래를 더듬어 보건대 그 시초는 알 길이 없으나 고려말경
이곳에 한 암자가 있어 보각국사가 이 암자에 은거하실때 이태조(李太祖)
께서  이를 애석히 여기시어  그곳에 백여년간에 걸쳐 대사찰을 지어 주셨
다>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서 볼때 고려말경에 이미  청룡사가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다만 보각국사와의 관련에서 처음으로 청룡사가 등장하고 있
으니 우선 보각구사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보각구사의 행장에 대하여는 전술한 정혜원융탑비의 비문이 그 중심을 이
루고 있으며 이 밖에는 약간만이 있을뿐이다. 따라서  비문을 중심으로 하
여 살펴보기로 한다.
 보각국사(普覺國師)는 본명(휘)이 혼수(混修)이며 자는 무작(無作)이고
호는 환암(幻菴)이다. 성은 조씨(趙氏)이고 본관은 풍양 (壤 )이다.
아버지는 숙령(叔鴒)으로 헌부 산랑(憲府 散郞)이고 어머니는 청주 경씨
(淸州 慶氏)로 모두 사족이다. #참고 : 풍양조씨세보 병술보 2엽 6세#
고려 충숙왕 7년(1320)3월13일에 태어났으며 12세에 출가하여 대선사
계송(繼松)에게 경전을 익히고 22세(1341 충혜왕복위 2)에 상상과(上上
科)에 합격하고 뜻한바 있어 어머니를 하직하고  29세(1348 충혜왕 4)에 
금강산에 입산 하였다. 2년간 정진한 후 어머니를 뵙고자 돌아와 5~6년을 
지내다 모친상을 당하자 어머니의 명복을 빌고 선원사(禪源寺)에 가서 식
창감화상(息彰鑑和尙)에게 능암경(楞巖經)을 익혔다.
이후 휴휴암(休休庵)에 가서 수릉(首楞)의 요지를 강론하며 3년을 머물다
가 충주의 청룡사(靑龍寺)로 갔다.
  이상에서 볼때 이미  청룡사가 있었음을 알수 있다.  이 시기를 추정하면 
1357 ~ 8년(공민왕 6~7년)의 일로 환암(幻菴)은 38~39세에 해당된다
고 하겠다. 환암은 청룡사에 있으면서 절의 서쪽 계곡을 따라 올라가 능선
상의 옛 집터를 찾아 그곳에 암자를 짓고 연회암(宴晦庵)이라 편액을 걸고
이 곳에서 기거하였다.
공민왕은 환암(幻菴, 混修)을 회암사(檜岩寺)에 머물기를 청했으나 가지
않고 금오산을 거처서 오대산 신성암(神聖庵)에 거쳐하였다. 이때 나옹혜
근화상(懶翁惠勤和尙)과 자주 만나 도(道)의 요지를 문답하였다.
나옹은 뒤에  금란가사(金襴袈娑), 상아불(象牙佛), 산형장(山形杖)을 환
암에게 주어 믿음을 표하였다.
공민왕은 10년(1361) 가을에  강릉도 안렴사에 명하여 환암을 대궐에 불
러 강단토록 하니  환암은  도중에 도망쳐 이름있는 산수를 두루 편력하여
수신하였다.
왕 18년(1369)에는 백성군(白城郡 : 현 안성군)의 김황(金璜)이 원찰 서
운사(瑞雲寺)에 맞이하여  선회(禪會)를  베푸니 많은 승려들이 찾아와서
배알하였다.
공민왕 19년(1370) 7월에 공부선장(工夫選場)에 홀로 뽑혔다. 이에 왕이 
종문(宗門)에 머물게 하니  환암은  내원(內院)에 있게 하는줄 알고  몰래
도성을 나와  위봉산(圍鳳山)에 숨었다. 왕 21년(1372) 왕명에 못이겨 불
호사(佛護寺)의 주지로 있다가  이듬해에 내불당에 불려갔으나  야반을 틈
타 도망처서  평해 서산(西山)으로 갔다.  왕명으로 여러 도를 수색하니 부
득히 나와 칙명에 따랐다.  왕 23년(1374)정월에 비로소 내원(內院)에 들
어가 법요(法要)를 강하니 왕대비가 더욱 존경하였다.  6월에 왕이 승하하
자 우왕(禑王)이 위에 오르고 광통무애원묘대지보제(廣通無碍圓妙大智普
濟)라 사호(賜號)하였다.  이듬해인  우왕 1년(1375) 가을에 송광사(松廣
寺)로 이주하였으며  이듬해 3월에 글을 올려 내원을 떠나 서운사(瑞雲寺)
로 들어갔다.  우왕 4년(1378)에  치악산으로부터 연회암(宴晦庵)으로 돌
아왔다. 이는 환암이 연회암을 짓고 떠난지 20여년만의 일이다.
이곳으로 중사(中使 : 內侍)가 찾아와 환암에게 광암사(光巖寺)를 맡아 달
라고 청하였으나  병을 핑계하고 들어갔으나  끝내는 나와서 3년을 지내고 
물러갈것을 다시 청하였으나 회보가 없자 밤에 도망처서 원주 백운암(白雲
庵)을 거쳐  용문, 청평, 치악산 등을 편력하면서  다시는 주지가 되지 않기

로 다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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